목욕하는 시간이다.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예전부터 그래왔다.
심란할때는 더 그렇다.
온 신경을 오로지 제대로 씻고, 가꾸고, 바르는데만 집중해서 사치스러울때는 한 시간도 쓴다.
그 아름다운 나만의 시간을 박탈당한지 9년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아예 그 시간이 제일 끔찍할 정도로... 딸 셋을 다 씻기고, 녹초가 되어서 아무 정성도 힘도 없는 상태에서 대충 내 몸을 마무리하는... 그럴때 마다 나는 물이 부족해서 씻기는 커녕 마시기도 힘든 오지를 상상했다. 그래, 내가 하는 불평은 벌 받을 정도야...
드디어 하나 둘 컸고
하나 둘 스스로 씻고
그러고도 아직도 혼자 씻기가 온오프인 막내가 있다.
억지로 네가 씻어! 할 때도 있지만 그래놓으면 씻고도 더러울 수 있다는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신박한 꼬마다.
결국은 다시 내가 씻긴다.
"엄마가 씻겨주면 더 깨끗하고 냄새도 좋아!"
정치적인 것... 칭찬을 적절히 하는 것이 고맙다는 말보다 효과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말라꺵이 하나 정도만 남은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
나는 다시 나의 황홀한 시간을 돌려 받았다.
나의 목욕 시간은 거의 의식에 가깝다.
태어나 씻는 시간 5분을 넘어 본 적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내 룸메이트는 처음에는 이런 나를 외계인쯤으로 보다가 그 후로는 덤덤히 받아들였고 지금은 내 목욕시간을 매우 존중해주는 편이 되었다. 엄마가 씻고 있을땐 그 누구도 방해하지 말라고 경계를 쳐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침범하면 나보다 더 격렬하게 화를 내 준다.
나는 절대 매일 씻지 않는다.
철저히 큰 목욕은 이틀에 한 번만 하는 것이 나만의 규칙이다.
목욕을 하는 날이면 욕조에 들어가기 두 시간 전 머리 전체를 오일샴푸를 해 둔다.
옷을 다 벗고 바디 브러시로 구석구석 쓸어낸다.
몸에 물을 적시고 바디 스크럽을 꼼꼼히 한다.
스크럽을 벗겨내기 전 세안을 물로 한 번, 비누로 한 번, 클렌징 폼으로 또 한 번
스크럽 기계로 얼굴을 다시 한 번 꼼꼼히 마사지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곡물 가루 스크럽도 한다.
머리를 감는다.
헤어 마스크팩을 잘 묻히고 틀어 올려 고정한 뒤 바디 스크럽을 벗겨낸다.
몸을 씻는다.
마스크팩을 린스한다.
머리를 타월로 감싸 초벌 드라이를 하면서 얼굴에 화장수를 바른다.
조금 두드려주고 충분히 흡수될 때 까지 스쿼트를 한다.
화장수가 스며들고 나면 오늘의 세럼을 하나 골라 골고루 바른다.
세럼이 스며들때 까지 까치발 올리기를 한다.
크림을 하나 또 골라 발라주고 아이크림까지.
머리를 말리면서 스쿼트를 한다.
나의 목욕 시간은 종합 자아실현의 시간이다.
각 단계에 집중하고 계획하느라 잡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그 시간만큼은 잊는다.
세상사.
걱정.
스트레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심란할 수록 예뻐진다...
심란할때 여인천하를 보는 저도 반성합니다ㅠ
심난할땐 자꾸 냉장고를 열어재끼는 습성을 가진 저로썬~^^;; 반성합니다~~~~ 좋은 습관으로 변경이 필요하네요^^
여러모로 정말 좋은 룸메이트네요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것 그리고 방어도 해준다는것
참 간단한듯 정말 어려운일이라는걸 살아보니 알겠어요
앞으로도 스트레스 받을일이 많을것같은데 다들 하루 한시간이라도 즐거운 일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
심란해질수록 이뻐지는게 진짜 아이러니입니다~ ㅎㅎ 그래도 맘불편해져도 이뻐진다고하면 위안이 좀더 될거같아요~!
심란할수록 맥주랑 침대로 힐링하는 저는 반성합니당!! ㅎㅎ 부지런함이 최고셔요! 이전 책에서 고서방님이 씻을때 얼굴의 일부?라고 하셨던 내용이 문득 생각나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