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
참, 토요일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 일상은 거의 매일이 닮아 있는데.
주말, 금요일 밤 이런거 잊은지가 언젠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이런 생활이 원래부터 내 인생인양 산지가 얼만데..
일어나자 마자 커피 마시는거 안 좋다더라.
그래, 안 좋은거 알지.
그래도 내 뇌가 그 정보를 강하게 외치기 전, 나의 충실한 손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씁쓸하고도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기계적으로 아침부터 컴퓨터를 두드리다가...
문득 생각나 다시 한 모금.
늘 그렇듯 또 맛 없게 식어 있고, 그러면 또 나는 항상 그랬듯 새 커피를 내리러 간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멍하게 서 있다가 문득.
곱게 접어 마음 한 구석 서랍에 꼭꼭 묻어둔 그 아이가 떠올랐다.
아직도 내 기억에 그의 얼굴은 앳되고
내가 살다가 떠올릴때마다 선명하게 그 못된듯 홀리는 웃음을 씩 웃어보인다.
네가 나와 또래란것 따윈 잊은지 오래다.
너는 늘 내가 꺼내고 싶을때 마다 꺼내면 그때 그 스물 몇의 풋풋한 청년이다.
가끔 꺼내 말을 걸때 나는 다른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가끔은 원망하기도 했고,
가끔은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했고,
또 가끔은 혼자 잠깐 우리의 키스를 회상하기도 했다.
오늘은 아무 생각없이 터져나온 말...
"얼마나 다행이야, 나와 헤어져서... 휴... 진짜 다행이지 뭐야."
진심이다.
이제야... 몇 십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그와 헤어진게 얼마나 행운인지 알았다.
그랬으니 이렇게 나는 살다가 현실에 지칠때 혼자 살짝 숨어 아무때고 아름다웠던 그를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나의 맨 얼굴을 볼 필요 없고,
내가 일년의 3/4은 내복을 입고 지낸다는 것을 알 필요 없고,
안경을 쓴 나는 눈이 작다는 것도,
나는 화가 나면 또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도,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잘 낸다는 것도...
그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어쩜 모른다.
그의 기억속에
나도 그렇게 스물 몇 풋풋하고 예쁜 그 아이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커피 물이 끓는 동안 생각했다.
우리...
그때 참 잘 헤어졌어.
너와 이렇게 질척이고 곳곳에 웅덩이가 가득한 현실을 살고 있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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