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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솔직히 말하면 크게 그의 팬은 아니었다. 약간은 느린 아다지오 템포의 그의 글이 어렸을때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그러니 한번에 읽혀지지 않아 두었다가 또 읽었다가… 그러다가 겨우 끝마치는 식이었으니까. 그때 나는 대학교 1,2 학년 쯤이었나… 나는 친구를 만나거나 또는 그 당시 만나던 남자를 만날때 시간이 남으면 종로 교보나 영풍 혹은 신촌 홍익이나 오늘의 책 같은 서점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때 항상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던 그의 책. 뒤적이다가 결국 한 권 사서 나오고, 샀으니 의무감에 읽었던 그런 책 중 하나였을까.


문득 돌아보니 나넷에게 ‘책 좀 읽으라’는 잔소리를 그친지가 좀 되었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죽어도 읽지 않으려는 아이와 매일 전쟁이었는데 요즘 세대답게 비쥬얼로 오디오로 친절하게 감각을 일깨워주는 상상할 필요 없는 그런 주어진 재미에 길들여진 아이는 공을 들여 상상을 하고 고찰을 해야 하는 책이 싫다고 당당히 말하곤 했다. 누구나 다 똑같이 보고 느끼는 그런 미디어 보다 똑같은 활자를 보고도 달리 생각할 수 있는 책의 매력을 모르는 아이가 안타깝고 또 화가 나기도 했다. 

자꾸 책을 읽으라고 하자 아이는 이번엔 일본 망가를 보기 시작했다. 뺏는다. 그 또한 인스턴트 즐거움이니까. 어렸을 때 나는 장난감, 마론인형, 레고… 그 어느 것도 가진 적이 없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 나는 아빠의 첫 선물은 세계 명작 100선이었다. 나는 그 백 권의 책을 단 몇 달 만에 다 읽어버렸고 아빠는 250권의 전집을 또 사주었다. 이후에는 시리즈물들을 선물 받았다. ‘셜록 홈즈’, ‘루팡’, ‘아가사 크리스티’ … 크면서 점점 책 중독자가 되어가자 언젠가부터는 너무 책을 보면 혼이 나기도 한다. 공부를 해야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아이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싸웠다. 


쉽게 웃을 수 있고 또 값싸게 금방 울 수 있는 만화에 빠지면 클래식이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서 만화책을 뺏었다. 그리고 내가 건넨 책이 ‘마담 까멜리아(춘희)’다. 그 책을 완독했을 때 부터다. 아이는 점점 시키지 않아도 클래식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오히려 책을 안 읽은지가 좀 된다.

그것은 내가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다.

혹여라도 내 기억에 잔재가 남아 나도 모르게 어느 구절을 내 것인양 쓰게 될까봐, 혹은 내 창의력이 모방에서 시작하게 될까봐. 그런데 씁쓸한 것은 말이다… 그렇게나 나만의 책을 쓰겠다고 좋아하는 독서도 멀리했는데 아이를 키우느라 뒷전으로 미루고, 혹은 원하는대로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아서 나는 슬럼프에 빠져든다. 그리하여 좋아하던 독서도 하지 않으면서 글도 쓰지 않는 그런 유령작가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똑같은 커피를 마시고 똑같은 랩탑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지만 내 글은 쓰지 않는다. 그래도 내 일과는 정신없이 바쁘고 저녁까지 다 먹이고 난 시간이면 아직 잠자리에 들 시간이 멀었음에도 나는 이미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서 잡다한 인스턴트 오락거리들을 영혼없이 보고 있다. 온갖 시리즈를 섭렵하고 하다못해 유튜브 잽핑으로 밤늦은 시간까지 서핑을 해대다가 어느새 기절하듯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있다. 


1월 2일…

오늘도 공항근처 배송을 갔다.

지겹다…

악마소굴 같은 상드니를 지날때면 돈 안내고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미친 트럭들과 얼굴조차 분간가지 않는 까만 인간들이 여기가 소말리아인양 차선 무시는 기본이고 깜빡이는 커녕 텔레파시로 내가 알아서 그가 끼어들지 알아채야 하는 식의 운전을 해대니까. 그곳을 지나고 나면 한 5년은 늙는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내가 이 사업을 접어야지. 글만 쓰고 살고 싶다… 그게 내 솔직한 기분이다. 글을 쓰려면... 이 길디 긴 지겨운 슬럼프의 터널에서 빠져나와야지… 아닌가… 일단은 쓰기 시작해야 할까… 그러려면 뭐부터 해야지? 생각이 많다가 비바람이 미친듯 부는 거지같은 날씨에 당연한듯 여기저기 멍청이들이 차사고를 일으켜놓고 그래서 4킬로 움직이는데 40분이 소요되는 지옥에 갇혔다. 옆에서 남편은 연신 한숨을 쉬고 듣던 클래식도 짜증이 날 때쯤 또 현실을 잊으려고 구독중인 한 유튜브의 새로 업데이트된 비디오를 클릭했다. 그는 30대 직장을 다니는 싱글남이고 서울대를 나온 똑똑한 사람이다. 별 것 없는 그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굳이 나를 웃겨주지 않아도… 그저 나와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나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러다가 갑자기 번쩍… 마치 번개를 맞은듯한 충격… 그 사람의 하루일과 마무리는 침대에서의 독서였다. 그게 충격이라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나도 저러지 않았나? 왜 저 모습이 나에게 충격일까…. 


그래서 나는 우울해졌다.

나는 언제부터 길을 헤매고 있나…

길을 잃었으면 다시 찾을 생각을 왜 하지 않고 있나.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집으로 오는 길, 무작정 서점을 들렀다. 어떤 책을 읽고 싶거나 어떤 책을 사야겠다거나 그런 생각 없이… 둘러보다가 발견한 아는 이름. 하루키다. 프랑스어로 써 있는 타이틀. 낯설다. 내가 아는 책인지 아닌지 조차 가늠할 수 없다. La Ballade de l’impossible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다가 저절로 입에서 터져나오는 탄성… ‘아… 노르웨이의 숲!’


아마 나는 분명 이 책을 읽었으나 대체 어떤 내용이었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한 나는 어쩌면 영원히 하루키 그의 언어로 원서를 읽을 일은 없을테지만 처음 보는 책인양 프랑스어로 된 그의 책을 오늘밤부터 랩탑 대신 펼쳐들고 읽어볼 셈이다.


글을 언제 다시 신나서 쓸지는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세상 그 무엇보다 재밌는 것이 책읽기였던 여덟살 혜진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젠 책을 욕심내는 딸이 보자마자 반색을 하더니 ‘내 책이야?’ 한다.


아니…

이건… 다시 나로 돌아가기 위한 내 책이야.


댓글 1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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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mments


stella
Jan 25

엄마한테 추천받아서 재밌게 읽은 책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재독해도 그때 기억이 나고 좋더라고요ㅎㅎ 춘희는 어릴때 청소년문학으로만 읽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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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k01
Jan 09

저도 고찰하게 되네요.. 당장 도서관가서 빌려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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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4

와글와글 하숙집 저는 아직 기다리고 있사와요..ㅎㅎㅎ

와글와글 하숙집이 세상에 나오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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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얼른 그 글을 쓰고 싶어요^^ 올해는 꼭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__^ 잊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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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ow7
Jan 03

아참, 저는 제가 넘쳐흐르는 감성에 불안정한 사춘기를 보내서 아이들이 감정 기복이라곤 없는 남편을 닮기를 간절히 바랐는데요, 그렇게 바라 놓고서도 딸램들이 절 안 닮은 부분이 은근히 또 속상하더라구요?

유전이 무섭다지만 자식과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지는 또 별개인가봐요. 그런 면에서 오뎃이 참 기특하고 오뎃과 함께하는 아젤님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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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남편과 나 둘 중 아이들이 누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키우다보니 1,3번이 그저 남편 같네요? ㅋㅋ 그런면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오뎃이 정말 제 베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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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ow7
Jan 03

노르웨이의 숲... 한참 감성적이던 증고등학교 시절에 뜻도 잘 모르고 정신없이 읽었는데 지금 읽으면 참 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본 책 속 주인공들은 어른이었지만 지금 보면 한없이 불안정하고 어린 젊은이들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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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도 오래전이라 책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아요 ㅋㅋ 이제 다시 찬찬히 읽어보면 분명 인생초짜였던 그때보다 보이는 것들이 더 많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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