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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러브레터(1)

이 이야기는 과연 누가 주인공인가...

매우 애매할 수 있다.

어차피 내가 쓰는 글이니 내가 주인공이라고 해두자.


그렇지만 나는 관찰자이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또 존경하는 한 인간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쓴지 40년이 넘었다.

나는 일기를 매우 성실하게 쓰는 꼬마였고, 사실만 기록하는 그 글에 재미가 없어 이야기라는 것을 쓴 것이 중학교시절. 고등학교때 나는 차갑고 친절하지 않은 공부를 잘하는 재수 없는 아이였으나 또한 인기가 은근히 있었던 것은 대부분 나의 이야기 공책을 줄 서서 빌리려는 팬들이 이미 있었으니까. 나는 차가운 인간인데 내 글은 그렇지 않다고 슬프고도 깊다고 감수성 충만한 고딩들이 그리 평가했었고 거의 여자 전교생이 다 빌려볼 즈음 양심불량인 어느 인간이 훔쳐가고 내 이야기 공책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 이후 글은 쓰지만 더 이상 빌려주지 않았다.


대학을 갔다.

사는게 재밌더라고.

공부하기 싫어서 글 쓰던 것을 까맣게 잊었지.

대학을 가니 부모님 감시도 없고, 혼자 살고, 남자도 많이 만나고, 술도 마시고... 나이트 클럽은 또 어찌나 재미난지... 세상에 책보다 글 쓰는 것 보다 재미난게 널렸더라고.


아주 오래 글을 쓰지 않았다.

수영도 자전거도 그렇다더라고.

아주 오랫동안 안해도 어느날 갑자기 하면 또 어제 했던 것 만큼 된다고.

나에겐 글도 그랬는지 모른다.

무조건 황금 시간표를 만들고자 골랐던 '고전문학의 현대화' 이런 이상한 이름의 과목을 수강신청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국문과 필수 전공이었더라. 첫 수업을 갔는데 향가, 삼국시대 이전의 가야의 문학 이런걸 배우고 있길래 안 갔다. 권총 차게 생겼는데 중간고사가 레포트로 대체라길래 딱 마감 시간 한 시간 남겨놓고서 미친듯 작성해서 냈던 레포트.


과사로 연락이 왔다.

국문과 할매 교수가 보잔다고.

갔더니 진지하게 전과를 제의했었지.

안했지.

글쟁이는 굶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길이니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남자를 만나고, 얼떨결에 같이 살고... 결혼을 날림으로 하고. 아이를 낳고...

나는 어느새 글을 쓰고 있었다. 이 남자는 글을 쓰게 만드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 누군가가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을 굳이 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을 좋아해주고, 떠나지 않고 항상 무엇이든 읽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오랜 사람들 중에서도 물론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공개적으로 그런 사람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검사해보니 INTJ더라. 사실 남의 평가가 그다지 나에게 매우 영향을 끼치는 타입은 아닌 게 맞다.

그런데도 그중 꽤 거슬리는 인간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인간은 나를 건드렸다기 보다 내 남편을 함부로 재단했기 떄문이지.


이정도로 오래 인터넷 생활을 하면 꽤나 차단한 인간이 많을 듯 하지만 나는 사실 열 손가락안에 꼽을 정도다. 그렇게 차단을 하는 관심조차 아까우니까. 그런데 이 인간은 내가 정성을 들여 차단했다.


내 팬이라고 자처한 인간은 어느날 나에게 상담이랍시고 시덥잖은 글을 보내왔는데

본인이 의사인데 만나는 남자가 그보다 못한 위치라고(이것 부터도 아주 오장육보가 뒤틀렸지. 대체 그 우월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도 그런 짝을 만나 사는 듯 한데 과연 괜찮은지가 그의 질문이었다. 무시했을수도 있겠지만 나는 최소한 친절했다. 그런 의문을 갖는 자체가 너는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인데 대체 왜 남에게 묻느냐고 했고 나는 그 여자를 그날로 차단했다. 나는 거만한 인간은 신경쓰지 않아도 오만한 인간은 참을 수 없다.


나는 요란하지 않은 사랑을 하지만 확실히 내 남편을 사랑한다.

그를 놀리는 것이 일상이라해도 절대 그를 깔보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살수록 더 감사하다.

그 모든 감사한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넷을 가질 수 있어서다.


내 딸은 다재다능이라는 단어의 실예를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내가 그녀를 자랑스러워 하는 이유는 절대 아니다.


나는 그녀가 정말 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자랑스럽다.


한 학년이 어린 테오는 나넷과 같은 중학교에 뒤늦게 전학을 와서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 했었다.

급식 시간에 자꾸 빠지는 그 아이를 데리고 와 따로 같이 밥을 먹어주고 얘기를 받아준 것은 나넷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사랑에 빠졌다.

남자 아이는 자꾸만 사귀자고 했고 나넷은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게 일년이 넘었다.

자꾸만 선 밖으로 밀려나던 남자아이가 결국 긴 장문의 메세지를 보내왔다.


"너를 너무 너무 사랑하지만 우리는 여기까지야"


그 긴 메세지의 핵심은 그러했다.

그는 얼마나 나넷을 사랑하는지를 할수 있는 만큼 묘사했고 그럼에도 이제는 정리한 본인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 절절한 메세지에 내 딸은 고작 '오키' 라는 맞지 않게 장난스럽고 성의 없는 메세지를 보냈다.

그녀는 그가 또 하듯 삐졌다고 가볍게 생각했으니 다시 하루 정도 지나면 사과의 문자를 보내올 것이라 자신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3일이 지났다.


결국 그녀는 조금 진지해진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 떠나서 이유나 좀 알자. 대체 왜 그러는지..."


그는 마치 핸드폰 액정을 내내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 일초도 안되어 문자를 보내왔다.


"너 떄문이 아냐"


"그러니까. 나 때문이 아닌데 왜 갑자기 이러냐고"


그런데 그 이후 그는 이틀간 말이 없었다.


이틀후 그는 아주 긴 문자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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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Jiwon Do
Jiwon Do
Aug 20

고서방님이 이어 아젤님 글에 영감을 주는 나넷의 친구들 이야기는 매번 기다리게 되네요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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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을 올려놓았으니 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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