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둘째 맞이 기념 대첩

16 March 2011


Categories: H.Diary


애 낳고 하루도 안되어서 고서방이랑 대판싸움


내가 말이다….

애 낳으러 병원 들어오고 이틀도 안되었는데 벌써 상거지 꼴을 하고 있는 첫째딸의 꼴이 어제 아침 애비와 함께 발랄하게 병실문을 들어설때부터 마음에 안들었다.


샤방했던 꽃 가디건에 필요 없이 말라붙은 밥풀떼기 데코는 왜 더 했으며, 원래 아이보리색인데 왜 군데 군데 갈색 염색도 시킨거냐.


그리고 그런 집에서도 입기 부끄러운 웃을 떡하니 외출용으로 입혀서


티셔츠는 빨간계열 스트라이프,


바지는 무지개 스트라이프,


모자는 파스텔 스트라이프.


게다가 양말은 천원에 세개짜리 스트라이프,


앤드! 상의보다 짧은 볼레로 스타일의 말라붙은 밥풀 디테일이 화려한 그지 가디건. ㅡ,.ㅡ


집에 널부러진게 애 신발인데 신발 하나 안신기고,


양말신은채 걷게 하질 않나,


원래 나넷이 없었더라면 꼬박 옆에서 불침번 서게 했을텐데 그나마 나넷때문에 전날 내가 수술한 몸으로도 어여 너네는 집으로 가서 푹 자고 내일 아침에 오라고 등 떠밀어 보냈더만


꼴을 보아하니 나 없다고 앗싸가오리 밤새 영화 때린 모양.


두 부녀가 충분한 휴식후 팔팔한 모습으로 나를 수발 들러 오길 바랬던건 크나큰 오산.


들어오자 마자 이건 지네가 애 낳은 사람임.


간이 침대 바로 설치하더니 애비는 드러눕고 딸래미는 피곤해도 이상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내내 병실을 회진하는데 정신이 또록하지 않으니 자꾸 여기저기 머리 박고 혼자 울고, 수시로 간호사들이 안 닫고 나간 문틈으로 기어나가서 그때마다 남편을 쥐잡듯 잡아야 하는 스트레스풀한 상황 반복.


드디어 내 화가 머리 끝까지 폭발한 것은…


하루종일 참고 또 참고 봤더니


이 인간이 애 밥도 안 싸온거임.


대충 우유에 간식에 과자에 자꾸 그런걸로 때우길래 목소리 깔고 “너 애 음식 언제 먹일꺼야?” 했더니만


약간 당황하더니 곧 먹인단다…


그러고 병실이 답답하다며 기어나가더니 애랑 같이 들어오는데 뭘 그리 잘한게 있는지 둘다 막 하하호호 신났음.


애 손에 이상한 장난감 발견… 절대 지 나이랑 맞지 않은 작고 뾰족하고 플라스틱으로 된 조잡한 물건….


맥도날드 키즈밀을 먹인게 분명한 저 증거!!!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대 분노가 폭발하면서 배 땡기는 중인것도 깜빡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내림..


심봉사도 눈 뜨고 걷게할 기적수행자 고서방.(그러고 보면 진정한 기적은 사랑 보다도 심각한 분노를 안겼을때 극도의 에너지를 창출하면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내가 유도 하러 들어가야 하는 전날밤에도 부탁을 했었음.


단 며칠만 꼼꼼하게 해주면 된다고… 청소 이런건 바라지도 않으니 애 밥은 삼시세끼 제대로 먹이라고…


가뜩이나 아기인 나넷한테 더 아기인 동생을 보게해서 미안해 죽겠는데…


아침부터 거지꼴로 돌아다니면서 수시로 나한테 와서 유 오케? 해가며 걱정해주는 15개월짜리 딸래미가 안쓰러워 죽겠더니만…(내가 이때 애 이도 안닦인거 알았음… 애 입에서 진짜 신기한 냄새가 났음 ㅡ,.ㅡ)


그리 신신 당부한 애 밥 안싸와서 키즈밀을 먹이냐 인간아…


그런거 사서 먹이고 때울거 같으면 내가 왜 유도 전날 밤에 부억에 붙어서서 소질도 없는 제자 붙들고 단독 쿠킹 클래스를 했겠냐고!!


처음에는 애는 놓고 너만 당장 사라지라고 소리 지르다가


도저히 이 몸으로 나넷을 감당할 순 없어서 일단은 애 데리고 가라고


배째고 누워 있는 마누라한테 니가 이럴순 없다고 소리를 꽥꽥 질렀음.



더 있다가는 진짜 혼날것 같아서 그런지 짐을 6.25 피난민만큼 빨리 싸더니 유모차에 애 장착하는것도 빛의 속도로하고 마구 도망가는 뒷모습…. 더 밉상임..좀 달래고 가야 하는거 아냐??


진통제 약효 퍼져서 잠들기 전까지 너무 서럽고 내가 퇴원만 해라 애 둘다 뺏고 넌 쫓아낼테다.. 막 이를 갈고 잠들었는데


새벽에 오데뜨 수유하러 깨서 메일 보니까 집에 가서 밥해 먹였다고 장문의 사과편지와 함께 증거 비디오를 제출한거 보고 또 좀 봐줄까 생각…


그러다가 지금 현재 너무너무 스시가 먹고 싶은 관계로 일단은 화해하고 올때 투고 해 오라고 근엄하게 한마디 해야할 불편한 상황임….(내가 스시만 너무 안먹고 싶어도 넌 이번엔 국물도 없었다 ㅜ. ㅜ)



--------------------------------------------------------------------------------

2023년 11월 14일에 덧붙임.
아침에 스윽... 이 일기를 읽는데 남편보다 내가 더 한심쓰... 갑자기 비싼 한우 자주 사줘서 잠깐 사귄 오빠가 생각난다. 좋은 사람이었으나 케미는 아무리 노력해도 생겨나지 않았고... 그가 사주는 소고기는좋았고... 결국은 양심에 걸려 고백하고 헤어졌는데 돌려말하는거 더 비겁한거 같아서 말했었다. '오빠... 진짜 미안한데 난 사실 오빠가 소고기 자주 사줘서 좋았었거든... 그런데 그런 이유로 계속 만나면 내가 진짜 나쁜 년이라서.. 우리 이제 그만 만나...' 그 소고기 잘 사주던 착한 오빠가 그랬었다... '괜찮아! 내가 사준 소고기도 나의 일부인걸. 계속 소고기 많이 사줄게. 오빠가...' 살면서 들어본 중 가장 호소력 짙게 붙잡는 마지막 말이었지만... 그렇게 오빠와 소고기를 떠나보낸 기억. 음식앞에서 무너진 일이 여러번이었구만.
댓글 5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5 Comments


eoeo8o
Nov 20, 2023

ㅋㅋ 어느 남편이나 엄마보다 아이를 더 꼼꼼하게 챙길순 없을꺼 같아요

Like

예랑s
Nov 16, 2023

ㅋㅋㅋㅋ 읽으면서 정말 빠져들어요 제가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입니다ㅎㅎ 그나저나 소곡이오빠 호소력에 감탄?하고 가요ㅎㅎ

Like

meow7
Nov 15, 2023

고서방님은 스시집에 큰절하셔야 합니다 ㅋㅋㅋㅋㅋㅋ

진짜 출산 전후 기억들이 이상하리만치 안 잊히던데, 아젤님은 너무 황당한 경험을 하셔서 더더욱 잊으실 수가 없으시겠어요 ㅠㅋㅋㅋ

Like

copy2580
Nov 15, 2023

그날의 일들을 기록해놓지 않았으면 지금 우리가 이 웃픈상황을 어찌 알겠으며 아젤님의 미친 필력에 제가 그자리에서 겪고 있는것같은 현실감을 어찌 누리겠습니까?

감정이입 제대로 하게만드는 스토리네요ㅋㅋㅋㅋ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

Like

tjdwns8857
Nov 14, 2023

글은 보통 말보다는 더 담담한 성질이 있건만 병원에서의 급박함과 덧붙임에서의 회상적이고 자아성찰적인 표현이 너무 찰집니다

Like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