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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썼다.

어려서 부터...

그때 내 독자는 단 한 명, 나였다.

아니, 사실 독자가 없었지...


나는 마음이 불편해도, 너무 기뻐도, 슬퍼도 글을 쓰고는 다시 읽지 않았으니 내 글은 독자가 하나도 없었다 해야 맞겠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웠는데 나는 글을 아는 모든 이가 그러리라 생각했었다. 남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은 불편했고 알몸을 보여주는 것 만큼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때 선생이 매일 아침 일기 검사를 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들도 그 지리하고 비슷비슷한 글 같지도 않은 글을 보는게 싫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 사실 그들은 제대로 읽지 않고 맞춤법 검사나 띄어쓰기 따위만 기계적으로 할 뿐이었지만...

그런데 내 일기는 그렇게나 꼼꼼히 읽어주는 것이 또한 싫었다.


표어 대회나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손을 들지 않았는데 항상 지목을 당했다.

네가 해라.

상을 받았다.

그것이 그다지 나에게 큰 의미인 적은 없다.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왜 내가 상을 받은걸까


고등학교때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다는 생각은 평생 하고 있다.

엎드려 자면 혼나니까, 깨어 있어야 했던 그 긴긴 자율학습시간

글을 썼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나는 거지같은 현실에 갇혀 있지만 내 글속의 주인공은 어디든 다니니까.

무엇이든 하니까.

나는 생일이고 크리스마스고 없는 무채색의 가정에서 자라지만 내 소설속의 주인공은 원하는건 다 가지고 기념일이 아닌 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선물을 받는 소녀니까.

현실의 나는 기껏해야 학교 괴짜들만 잔뜩 이상한 취향의 음악을 라디오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주는 또 다른 괴짜지만 내 이야기속 그녀는 햇살처럼 반짝여 멋진 남자에게서 진지한 고백을 받는다.


짝이 옆에서 훔쳐보다가 제발 빌려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그래, 너도 현실이 지겹겠지. 시시하겠지만 읽어봐...


그렇게 내 공책은 거의 전교를 돌다가 실종되었다.

그게 내 첫 소설이었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썼나 조차 희미한 내 첫 소설.


독자가 하나 없어도 나는 글 쓰는 거 좋았었고

몇 명 읽어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는데

언제부터 나는 이름 없는 작가라고 힘이 빠져 하는건지 오늘 생각해 본다.

내가 십 년 동안 이름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글이 좋지 않아서겠고 또한 대중성도 없어서겠지.

내 글이 이름나지 않는 것이 고민인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욕심이 생겨 슬퍼졌는지에 관해 생각해 본다.

결론은 없다.


그저 겨우 찾아낸 이유.

그냥 내 인생이 항상 애매해서다.

항상 대충 애매하게 살아와서.

못 하는 편 아니었다 해도 특별히 반짝일 것 없던 애매한 성적에

애매한 대학에

애매한 인생을 살았다.


나처럼 애매하게 살지 말라고, 할거면 하나를 제대로 파라고 그렇게 애들한테 말은 한다만

솔직히 나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결국 애매한 나와 이런 나보다 더 애매한 남자가 만든 아이들이니.

그래도 항상 애매한 나를 가르쳐 주는 적어도 많이 긍정적인 아이들이라서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엄마 왜 글 안 써?

-써 봤자 애매해서 그래


엄마 그래도 열심히 써. 엄마가 그랬잖아.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투덜댈 자격도 없다고.

-할 만큼 한 거 같아.


아니거든? 할 만큼 하지 않았는데 자꾸 포기해서 애매한거거든?


오늘 내 아홉 살이 나에게 한 말이다.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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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유니
Sep 12

지루하고 재미없는 제 일상에서 아젤님이 쓴 글을 읽는 시간은 달콤한 휴식시간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지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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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진짜 감동이옵고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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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ear
Sep 12

할 만큼하지 않고는 포기해버려서.. 오늘도 발장군님의 말씀 가슴 깊이 새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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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뒷통수를 마구 잡아당기는 말을 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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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211
Sep 02

저는 학창시절에 거의 매일 책을 읽는 독서광이였지만 지금은 1년에 10권도 겨우 읽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었습니다. 넷플릭스도 이것 봤다 저것 봤다 ...아무튼 집중력 문제를 겪고 있는데요.

아젤님의 책은 10년전에도 지금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습니다. 요즘 한국 문학은 여성 작가들이 주류고 그 중에도 '페이지 터너'로 유명한 작가님들이 몇 분 계시는데, 개인적으로 아젤님의 글이 그분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글이 유명해지려면 힘 있는 출판사의 전략적인 마케팅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책 한권 띄우는 데 콜라보, 서점 배너 노출, 매체별 카드 뉴스 홍보, sns 마케팅 등등 들이는 공이 엄청나더라구요. 팬으로서 아젤님의 글과 영상이 바이럴을 타서 더 많은 분들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이쁘고 똑똑한 고자매들이 한 건해서 엄마 채널을 홍보하는 효도를 할 수도 있구요 ?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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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세상에 ㅜ.ㅜ 너무 좋아서 캡쳐해뒀습니다. 힘 빠질때 마다 꼭 다시 읽으려고요^^ 이렇게 저에게 또 불씨를 불어넣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다시 마음 가다듬고 결국 좋아하는 건 글쓰기니 계속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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