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현대화가 되고 또 세월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찾아보면 꽤 많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학교 단체 사진, 증명 사진… 그런데 나는 보통 증명 사진은 신청을 하지 않고, 추억을 위해 학급, 학교 단체 사진만을 신청하곤 했었다, 아빠가 사진작가인 애들은 인생샷이라 할만한 사진이 만장쯤음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해에는 그 마저도 망설이고 있었다고 고백해야겠다.
아이의 얼굴이 많이 변했다.
사실 매일 같이 지내면 그런 변화를 느끼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매일 봐도 가슴이 철렁할정도로 아이의 얼굴은 부었다가 줄었다가 그리고 빨갛게 되었다가 또 멀쩡했다가… 독한 약은 아이의 얼굴을 매일매일 새롭게도 바꾸어 놓는다. 그것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 여름을 지웠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겠지. 물론 절대 잊지 못할 올해 여름이겠지만 굳이 사진 같은 물건으로 더 또렷히 남겨둘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포토 클라스(학교 사진) 이번주 금요일까지만 신청받는대. 오늘 같이 웹사이트 보고 골라서 신청하자.”
“단체 사진도 여러 버전이 있어? 골라야 해?”
“응, 단체 사진도 조금씩 다른 몇 가지가 있고, 그리고 증명사진도 여러 버전이 있고, 또는 내 얼굴이 들어간 컵이나 스노우볼, 열쇠고리, 접시 같은 것도 고를 수 있어.”
안 하던 소리를 한다.
원래 아이도 아빠 사진과 비교가 안 된다고 학교 증명사진은 신청 하는 걸 싫어했었는데…
“… 증명사진 같은건 아빠가 찍어준 사진이 훨씬 나으니까 신청 안 했었잖아. 왜 갑자기 신청하고 싶어?”
“… 최근에는 아빠가 내 얼굴을 크게 찍어준 적이 거의 없단 말이야…”
“… 아…그래 일단 한번 사진들을 보자.”
남편은 카메라 렌즈 안으로 들어오는 아이의 낯선 얼굴이 아플때가 있어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고 얼마전에 말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때 ‘왜?’라고 묻지 않았다. 나도 그러니까… 자식 안 예쁜 엄마가 있을까만 유독 이 자식이 예뻤다. 자고 일어난 얼굴도 귀엽고 잠든 얼굴도 사랑스럽고 뿔이 나도 깨물어주게 귀엽고 웃으면 세상의 불을 켜는듯 온통 환해지는 아이다. 그 아이의 볼이 복어처럼 붓고 너무 익은 토마토처럼 진빨강을 띠고 면역 억제제의 부작용으로 코밑에는 수염이 나고 눈썹은 너무 짙어지다 못해 가운데가 붙을 지경이고… 못생겨져서 슬픈게 아니라 온통 ‘나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래서 나도 하루 백장 넘게 찍던 아이 사진을 멈춘지 좀 되었다. 물어본다면 ‘굳이 제일 예쁜 순간이 아닌 것을 남길 필요는 없지 않나 싶어서…’라고 답하겠지. 그런데 아이가 덤덤하게 ‘요즘 아빠가 사진을 안 찍어준다’고 했을때 덜컥… 심장이 살짝 내려앉는다. 섭섭했나… 우리가 너무 티를 냈나…
“아빠는 혹시나 네가 사진 찍으면 싫어하거나 속상해 할까봐 그런거지…”
“… 괜찮아. 내가 속상한 것 보다 엄마 아빠가 그 사진 보면 속상하니까 안 찍는거 알아. 상관없어. 그리고 이해해. 하지만 그러니까 난 이번 증명사진 신청하고 싶어.”
아이 모르게 한숨을 살짝 삼키면서 심호흡을 하고 사진을 고르는 페이지로 들어가 본다. 학교 애들 하나 하나 줄 세워놓고 똑같은 셋팅으로 애정없이 찍은 사진이 몇 장 샘플로 올라와 있다. 사진 찍는 날은 유독 부었었는지 보자마자 속으로 ‘이게 뭐여…’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참 마우스 등을 긁어가며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마우스가 ‘안 가려우니 그만 긁어, 피나겠어’ 할때까지… 나는… 이 사진을 주문하기가 정말 싫다…
“엄마가 주문하기 싫으면 내 용돈으로 신청할래.”
내 마음을 읽은 아이가 다시 한 번 반드시 주문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 그게…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게 아니잖아… 이걸 굳이 간직해야겠어? 솔직히 제일 못생긴 모습인데?”
모르겠다.
나는 돌려 말하는 법을 아직도…
속으로 계속 생각하던 걸 입 밖으로 꺼내버리고 후회를 했었나… 그것도 모르겠다. 어쩌면 의도하고 한 말인지도 모르니. 그런데 옆이 한동안 조용하다. 화가 났겠지. 신청하고 싶단 걸 못하게 하니까… 슬쩍 돌아보는데… 아파도 안 울던 아이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 왜 울어? 엄마가 이 사진 신청 못하게 해서 우는거야?”
“몰라!!”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쓰는 여덟 살의 울음이 아니다. 분노와 서러움이 섞인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당황스럽다.
“제일 못생겼다 해서 화가 난거야? 그게 서러운거야?”
“그게 왜 서러워. 제일 못생긴 얼굴 맞는데 뭐.”
“그러면 왜 울어…”
아이는 겨우 눈물을 닦고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말한다.
“나는 이 여름을 꼭 기억해야 한단 말이야. 내게 어떤 일이 생겼고 내 얼굴이 어땠는지… 꼭 기억해야 한다고! 그래서 난 이 사진을 내 방에 걸어둘거야. 잊지 않도록. 그래서 살다가 힘든 날이 오면 이 사진을 보면서 생각할거야. 난 뾰뾰라도 이겼는데 못 이길게 없어. 아무리 못생겨져도 이만큼 못생겨지지는 않을거야. 그래서 이 사진은 앞으로 내가 살면서 넘어지려 할때 붙잡고 일어날 손잡이가 되어줄거야.”
우리 대부분은 예쁜 모습만 남기고 근사한 모습만 기억하고 싶어한다. 찍힌 사진이 못났으면 생각없이 바로 지우고 예뻐보이려고 핸드폰 앱도 다양하게 사용하곤 한다. 왜곡된 내 얼굴이라도 예뻐보이기만 하면 만족스럽게 저장한다. 누가 이 아이처럼 가장 못생긴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두고 기억하겠다고 할까… 그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굳이 못생긴 사진을 꼭 간직하겠다는 여덟살… 그녀의 속내를 들었을때 나는 긁어대기만 하던 마우스를 멈추고 주문 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눈물자국이 얼룩진 얼굴로 아이는 그제사 만족한듯 웃고 있었고… 나는… 또 울고 있었다…
발렌티나 대단해요.
근데 아젤님 한말씀 올리자면
발렌티나는 부어도 또 그게 사랑스럽고 귀여워요.
제눈엔 그렇습니다. 언제나 예쁘다고 꼭 말씀해 주세요.
문득 발렌티나 생각이 나서 부러 찾아외 댓글을 달아 봅니다. 아젤님의 세 딸들에게 아젤님의 멋진 부분들이 보여서 정말 부럽고 신기해요. 나넷의 말빨과 집념, 오뎃의 사려깊음, 발렌티나의 정리정돈 습관과 강인함... 이 멋진 세 자매와 함께하면서 나오는 보석같은 이야기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배웁니다
눈물만 주룩주룩 나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너무 아깝고 아까운데 마음이 자라는 모습은 짠하기까지~~ 얼른 훌훌 아픈거 털고 일어나길 마음속 깊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