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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예쁘다…


…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말 보다 좋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 예쁘다는 그냥 예쁘다는 말이다. 

누군가에겐 흔해빠진 말일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귀한 말이다.

나는 객관적으로 예쁘진 않아 그런 말을 흔하게 들은 적 없다. 물론 헤프게 예쁘다는 말을 난발하는 사람으로 부터 들었던 말은 담지 않았으므로. 혹은 어렸을때는 항상 조건이 붙은 칭찬을 들었다.

‘얼굴에 점만 없으면 정말 예쁠텐데…’ 따위의…


물론 사귀는 남자에게 들었던 예쁘다는 말도 포함하지 않겠다.

그의 눈에 나는 예뻤을테니… 내가 말하는 ‘예쁘다’는 말은 정말…. 뭐랄까, 나와 그다지 관련 없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처럼 튀어나온 그 ‘예쁘다’는 말을 말함이다. 그 감탄사의 일종으로 쏟는 ‘예쁘다’는 진심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은 딸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참 쉽게도 그 감탄사를 듣는다.

그것은 그들의 복이다. 길을 걷다가 혹은 시장을 갔다가… 기차를 타거나 상점을 들어가도 하루에 몇 번은 듣는다.

얼굴 한 번 대한 적 없었던 낯선 이가 계산 없이 생각 없이 감탄사처럼 쏟는 그 말, ‘예쁘다’


흔하게 들어보지 못한 만큼 나도 그 말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에게… ‘예쁘다’는 말은 너무도 귀해 정말 심사숙고해서 하는 말 중 하나다. ‘사랑한다’ 처럼…

그래, 어쩌면 예쁘다는 말은 ‘사랑한다’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움직여 나도 모르게 나오는 진심이니까.


예쁜 것, 예쁜 사람은 힘이 있다.

달달한 초콜렛 백 개 정도는 가뿐히 이기는,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마력이다. 내가 예쁜 것만 보고 싶듯 다른 이도 그럴테니 나는 어딘가를 나설때는 나름 최선의 노력을 한다. 아 예쁘다… 소리는 못 들어도 나를 보고 기분이 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아는 곳도 아닌 이 나만의 비밀 정원을 알게 된 것은 올해 8월이었다. 7월 말부터 꼬마가 뾰뾰라를 진단받고 응급실에서 입원까지… 회오리처럼 몰아쳐오는 불행의 폭풍을 조금 건넜다 싶을때다. 무염무당… 평생 음식이라 생각지 않던 그런류를 아이가 먹기 시작하면서 나도 저절로 살이 빠져간다. 이 비겁한 엄마는 같은 식단을 같이 하다가 차라리 굶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리도 약한 어미는 일주일에 한 번만 몰래 맛난 것을 먹기로 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리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우울해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왜 데판야끼였냐고?

살면서 운 좋게도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 본 편이다. 그 많은 맛난 음식들 중 두고 두고 또 생각이 나는 음식은 돌아보니 하나였다. 바로 데판야끼. 우리는 한국인이니 무조건 혐일을 해야한다는 그런 기본은 제쳐두자. 하나 하나 다 미워하기도 피곤하고 좋은 건 좋은거다. 나는 일본을 용서하지 않지만 그들의 음식, 손재주는 좋아한다. 그들의 만화도 좋아하고 소싯적엔 음악도 들었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들 중에서도 일본인이 있다. 그들만이 표현해내는 그 아주 아주 작은 디테일이 있다. 나는 큰 세상보다 작은 세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데판야끼는 내 앞에서 내 음식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를 요리사가 보여주는 음식이라 좋았다. 음식은 맛만 있어도 백점인데 데판야끼는 거기에 정성과 혼이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최고의 음식이 데판야끼였고 살면서 먹어본 가장 좋았던 데판야끼는 하와이 어느 고급 일식 데판야끼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파리에도 데판야끼가 있겠지?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꽤 있었다. 대부분은 역시 또 중국인들이 하는 곳이다. 그들이 왜 이리 본인들 음식에 집중하지 않고 일식, 한식을 넘나들며 본질을 흐리는지는 알수 없다. 후기들을 좀 살피니 어디가 정통인지를 알겠다. 그리하여 찾아간 곳이 지금 나의 비밀의 정원이 된 그곳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데판야끼는 자고로 다찌에 앉아 쉐프와 가까이 하고 가끔 그와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곳인데 덜컥 다찌에 앉았으나 쉐프는 우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본인의 작업에만 집중했으며 나와의 소소한 이야기는 커녕 쉴새없이 조수를 닦달하기에 여념이 없다. 연신 혼이 나는 조수에게 이입되어 나마저 불편해지려던 참에 맛보게 된 투덜이 쉐프의 음식… 그것은 정말 또 다른 차원의 음식이다. 음식으로 이렇게나 감동스러울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손놀림, 요리하는 과정은 경이롭고 한치의 착오도 없으며 바쁜 와중에도 마무리가 훌륭했고 디테일 하나 하나 정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매주 화요일 파리를 나갈때 마다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몇 번 더 방문하고 나서야 우리가 들어서면 쉐프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처럼 웃으면서 왔냐고 반기기 시작했다. 처음 그가 활짝 웃으면서 반겼을때를 잊을 수 없다. 마침 문을 열었을때 따가울정도의 햇살이 같이 들어섰고 그 햇살 사이로 그가 웃고 있었다. 특히 그날은 예약 전화를 했을때 그가 직접 대답을 했었다. 이름을 말하자 머뭇거리다가 알겠다 했는데 방문해서 우연히 예약 장부를 보고 슬쩍 웃었던 기억. 아마 그는 아젤이라는 이름의 스펠링을 묻고 싶어 주저했었던 것인가 보다. 여러번 프랑스어로 아젤을 써보려 했다가 결국 줄을 긋고 일본어로 아젤이라 써놨더라… 나는 그 마저도 귀여웠다. 그리고 알았다. 그는 이제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두 달 정도 더 방문하고 나서는 주문이 간략해진다.

웬만하면 메인을 소고기로 시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굳이 굽기를 말하지 않아도 바싹 굽기전, 핏기만 살짝 사라져 내가 소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잘 익힌 스테이크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도… 코코넛이 들어간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디저트에 코코넛 가루가 들어가는 식이면 내 것은 쉐프가 직접 코코넛 가루 대신 마차 가루나 고소한 콩가루를 뿌려주곤 한다. 누군가가 나의 취향을 안다는 것은 근사하며 대접받는 기분이다. 소소한 대화를 주고 받지 않아도 충분히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여전히 많은 것을 모른다. 그의 팬이 된 나는 어렵지 않게 여러 요리나 쉐프 잡지에서 그의 기사를 섭렵해 그가 나보다 일곱 살 위라는 것과 그의 걸어온 길, 프랑스 파티쉐를 익히기 위해 이미 경력이 꽤 있음에도 유명하다는 파티쉐 전문 호텔등에서 배우기 위해 일했었다는 것, 교토 출신이라는 것, 흔한 쉐프용 하얀 가운보다 예의를 다한 셔츠 정장 차림을 좋아한다는 것등을 알게 되었지만 그가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등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 또한 우리가 항상 같이 밥을 먹으러 오는 연인 사이인지 혹은 부부인지를 알지 못했다.


계절이 가을로 넘어갈때 나는 긴 머리를 자르고 짧은 단발 펌을 했다. 한참 아이가 아파 독한 약을 매일 먹고 약 때문에 한층 까다로와진 아이 수발을 드느라 심신이 지칠때쯤이었다. 뭐 하나 내 맘대로 안 되는 인생이란 생각만 들었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헤어스타일을 건드린 것이었다. 변한 모습을 하고 그의 정원을 찾았을때 인사 이외에 건네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조금 긴 말을 했다. 내가 아닌 남편에게…


“여자친구 스타일이 바뀌었군요. 잘 어울립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우스웠다. 나에게 바로 말하면 될텐데 말이다. 특유의 일본인 매너랄까. 혹시라도 남편이 신경쓰여 할까 봐 남편에게 내 이야기를 한 것일수도 있고, 혹은 여자에게 직접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 하는 그런 성격일수도 있겠고. 남편은 그가 건넨 칭찬에 우리에 관한 정보를 하나 더 알렸다.


“여자친구였었고 아내가 된 지는 14년째지요.”


이 남자가… 거기에 더해 사실 이 여자는 변화무쌍하다는둥 언젠가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전했던 원치않는 정보도 흘릴까 노심초사한 것은 비밀이다. 다행히 남편은 그다지 중요치 않은 ‘내 여자’라는 울타리를 쳤을 뿐 그 이상은 더하지 않았다.


대부분 이 비밀 정원은 내가 비밀 정원이라 부르는게 무색하리 만치 예약이 꽉 차 있어 우리는 늘 방문할때 다음주 예약을 같이 하곤 했다. 하지만 가끔은 한가한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그는 바쁘지 않은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도 우리가 잘 먹고 있는지를 슬쩍 점검하기도 하고 빵이 떨어지면 얼른 매니저를 불러 눈치를 주기도 하는 배려를 보였다. 조금 늦게 도착해 앞의 순서가 한참 밀렸다는게 뻔한데도 허기진 우리를 기다리게 하지 않게 하려 순서를 슬쩍 바꾸어 우리 것을 먼저 내기도 한다. 우리 접시의 음식 양은 항상 조금 더 많고 생선은 조금 더 크고 고기는 몰래 한 점을 더 숨겨 주기도 한다. ‘잘 지냈어요?’ , ‘요즘 어떠세요?’ 등의 인사가 없어도 그런 배려가 더 깊다는 것을 알겠다. 나는 그의 요리하는 모습을 마음껏 사진으로 담을수도 있고 영상을 찍을수도 있다. 내 카메라가 전혀 신경쓰이지 않으니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그의 무언의 허락은 굳이 묻지 않아도 얻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끔 하는 또 하나의 그의 배려가 있으니.


마침내 겉옷을 챙기고 일어서는 모양을 하면 어느날은 직접 문을 열어주며 배웅을 하기도 했다. 처음 그가 직접 문을 열어주고 잘 가라고 인사했을때는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감동으로 벅찼었다. 또 한 번은 문을 열어주며 잘 가라는 말 대신 ‘빨리 또 보자’라고 했다. 그 말은 참 설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글을 쓰게 한 그 말을 건넸다.


12월 26일…  깜빡하고 예약을 못했다. 이틀전에야 생각이 나 전화를 하니 내가 누군지 아는 매니저가 전화 너머로 어쩔 줄 몰라하며 미안해하더니 연말이라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그럼 이번 해 마지막 식사는 못하는건가... 섭섭해 하며 끊으려는데 매니저가 부른 내 이름을 들었는지 수화기 너머 쉐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돼! 예약 받아!’ 매니저가 당황하며 다시 한 번 예약이 꽉 찼다고 하는데 ‘된다고! 오실 시간 물어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 오너 빽으로 우리는 그렇게 자리를 얻었고 그런 특혜를 받은 것 만으로도 뿌듯하고 기쁘기 짝이 없다.


항상 앉는 다찌의 우리 자리에 앉았다.

마침 내일 부터는 조금 긴 휴가에 들어간다고 매니저가 일러준다. 다시 만나는 날은 새해 1월 9일이 되겠다고… 그 날도 그는 별 다른 것이 없다. 묵묵히 음식을 했고, 찡그린 얼굴로 가끔 실수하는 조수를 다그치고 멋진 디저트를 직접 마무리하고… 그의 디저트는 그대로 포장해서 두고 두고 먹지 않고 보고만 있고 싶을 만큼 예쁘다. 그런데 더 예쁜 디저트를 나에게만 만들어 주었다. 아이스크림에 쿠키 뚜껑을 얹어 큰 송이버섯을 만들고, 질소 거품을 잔뜩 올려 눈이 소복히 내린 지붕을 짓고, 고운 설탕 가루를 뿌려 눈밭을 선물한다. 나는 한참을 먹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촬영하고 그러고도 망설이고 있었는데 보다 못한 그가 웃으면서 나즈막히 말했다. ‘녹아요. 얼른 먹어…’


아쉬운 시간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쉐프가 따라나와 문을 또 열어준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게 직접 말했다.


“Vous êtes très jolie aujourd’hui.”

(당신은 오늘 정말 예쁘군요)


나는 순간 옆의 남편을 잠시 잊었지만 미안하지 않다. 이 정도는 이해해줄 사람이니까. 그래서 남편은 보지도 않고 놀라 쉐프만 보고 있는데 그의 손이 어쩔줄 몰라 하고 있는게 보였다. 악수를 건넬까 말까.. 분명 그는 그렇게 망설이고 있었다. 얼른 내가 손을 내민다. 한번은 꼭 잡아 보고 싶었다. 그 모든 훌륭한 예술을 이루어내는 예술가의 손. 덥석 내가 손을 내밀자 그제사 마주 손을 꼭 잡아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약간 더듬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Vous êtes très jolie”


그 어떤 프랑스인이 해 준 칭찬보다, 살면서 들어본 어떤 좋은 말 보다… 더 좋다. 그는 분명히 계산하지 않고 감탄사처럼 그말을 했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으니까.

약간 이른 새해 인사를 서로 건네고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몰래 행복해야 했지만 괜찮다. 몰래 행복했던 이 날은 내내 나를 미소짓게 할테니… 내 행복을 다른 이가 알까조차 두려운 이 감정. 태어나 처음 누군가를 스타로 생각해 본 내게는 낯설고 신나고 또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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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Dabee
Dabee
Jan 03

꼭 계속 글 써주세요, 아젤님..! 제 단골 식당이 생각나기도 하고... 누군가 내게 진심으로 예쁘다 해주어 기뻤던 순간도 생각이 나고... 아젤님의 행복에 제가 다 가슴 뭉클해지기도 하고...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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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계속 쓰게 해주시는 다비님, 진짜 감사해요. 읽어주는 이 없다면 아마 계속 쓰기가 힘들겁니다. 올해는 꼭 진짜 글 다운 글 써보도록 할게요^^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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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30, 2023

하.. 뭐랄까 되게.. 설레네요..

나의 스타에게 받는 최고의 칭찬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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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성덕? 이라고 하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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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cari1979
Dec 30, 2023

세상에 행복한 식당 저도 가고파지네요

진짜 나만의 식당 있음 진짜 행복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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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말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 이런 행복도 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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