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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3일 Pantecôte(성령강림대축일)

나넷과 오뎃은 세례 준비를 한 것만 3년째.

전의 주교님이 발렌티나 세례를 해 주실때 언니들 세례도 곧 이어 하자고 했으나 교리를 제대로 충분히 듣지 않았던 때라 좀 더 배우게 하고 세례를 받겠다고 했었다. 나는 모태신앙이 아니고 남편은 모태신앙으로 카톨릭 신자가 된 경우인데 종교를 택할 기회가 없었던 것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스스로 찾아간 나와 다른 그의 종교에 대한 회의를 충분히 이해했고 아이들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교리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세례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교리를 들은지 일년 쯤 되었을때, 그들이 스스로 세례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세례는 기약없이 미루어졌다.


우리는 세례에 그다지 조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연히 작년부터 성당을 옮겨 다니게 되었다. 전에 다니던 큰 성당이 아니라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성당. 이 교구의 주교님이 집전하시는 성당인데 미사의 반 이상이 라틴어로 진행되고 일반적인 미사 형식과 좀 많이 다른 편이다. 예를 들면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거나 하는 부분들이 없다. 굉장히 중세시대의 미사방식을 따르는 편인데 프랑스어 미사도 어려운 나에게 라틴어는 가끔 고문일때가 있다. 하지만 그 무겁도록 경건함이 좋아 굳이 노력하지 않고도 매주 미사를 나가게 된다.


신부님이 어느날 미사 후 우리를 불렀다.

이제 큰 아이들도 세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하신다. 물론 받고 싶지만 코로나라 어찌 할지를 모르겠다 했을때 그러셨다.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집에 오셔서 아이들 교리를 가르치시겠다고. 그리고 5월 판코뜨에 세례를 받는 걸로 그렇게 정하셨다.


그리고 어느덧 그게 오늘이 되었다.

그들의 세례일인데 설레는 엄마는 5시 반에 일어나 감회가 새롭다.


본 세례 전인 어제 한시간동안 신부님과 우리가족만 참석하여 그들의 엑소시즘을 진행했다.

평생 지니게 될 성물 십자가 목걸이에 축성도 받았다.

오뎃은 엄마의 디자인인 Petit croix Coeur purité를, 그리고 나넷은 내가 20년간 지녔던 첫 아베끄뤼 십자가를...


한국에서 성당을 다닐때면 부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 모두가 카톨릭인 사람들. 일요일미사를 가족이 모두 같이 참석하는 사람들...

나는 집에서 혼자 카톨릭이고 그래서 성당을 나가면 혼자 앉아 있곤 했는데 가끔은 그게 신부님들 눈에 띄었는지 따로 관심을 받는 편이었다. 프랑스에 오고 나서는 혼자 아시안이라 그런지 신부님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 같다.


"어떻게 혼자 카톨릭이 되었어?"


아이들이 물어본다. 그래서 아주 까마득하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 그 옛날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서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이 울었었다.


굳이 놀리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도 누군가 내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점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눈물이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믿지도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신을 많이 원망했었다. 대체 왜 나만?

그때 누군가가 내게 그랬다.


"넌 하느님이 특별히 사랑했나봐. 그래서 표시를 해둔거야. 네가 어디있건 금방 찾으려고..."


그냥 그 말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나는 카톨릭이 되었는데 처음 성당을 나갔던 날 그 천장 스테인드 글라스 에서 내 머리로 떨어지던 빛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믿고 살고 있다.


"그는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 고...


그리고 그는 정말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


본인 의지 없이 받았던 유아세례가 불만이었고 그렇게나 독실했지만 일찍 세상을 뜬 엄마, 그녀의 죽음후 남편은 오랫동안 하느님에게 화가 나 있었었다. 처음 만나 지내던 어느날 같은 카톨릭이라 정말 좋다고 했을때 그는 딱잘라 말했었다. 자기는 하느님에게 화가 많이 나 있고 아마 잘 풀어질 것 같지 않으니 그다지 기대하지말라고... 그래서 나는 같이 지내고 결혼한 후에도 혼자 가끔 성당을 나갔고 나넷을 데리고 파리 9구의 성당을 다닌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날 기적처럼 남편이 돌아왔다. 그가 같이 미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하느님의 고요한 힘을 느꼈고 막막했던 아이들의 세례가 일사천리로 진행된것도...


물론 세례를 2주 앞두고 또 가슴이 철렁한 일이 생겼지만...

대부 대모를 하겠노라고 몇 년 전부터 나서서 고집했던 이웃 부부는 황당하게도 2주전에 마음을 바꿨다. 어른이 말을 바꾸는 것에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다. 물론 우리도 황당했지만 것보다는 이 촉박한 시간에 제대로 대부 대모를 찾을 수 있을까가 정말 걱정이었는데 내가 믿었듯이 그는 항상 우리 곁에 계셨다.


오뎃은 로마의 졸지오 삼촌이 그리고 나넷은 아빠의 절친인 브누와 삼촌이 대부를 해주기로...

우리의 부탁에 그들은 정말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들의 다정한 편지..

'나넷, 내가 카톨릭인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일 정도로 나는 카톨릭 가족의 일원으로 크게 생각지 않고 살아왔지만 오늘 너의 대부가 되기로 한 순간 생각했다. 카톨릭이라 정말 좋다고... 너의 대부가 될 수 있으니.

내가 평생 너의 좋은 대부가 되어줄께. 힘들면 기댈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할땐 언제나 내가 너의 곁에 있을께. 세례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급하게 정하게 된 것이라 두 대부 모두 세례식에는 참석을 못한다. 브누와는 이미 이주 전부터 부모님과 남부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다.


하느님은 잊지 않고 있었다.

내가 카톨릭 가정을 이루고 싶어했다는 것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하느님.

이방인으로 지내는 이곳을 너무 춥게 느끼지 않게 해주시는 것과 저에게 이 따뜻한 가족들을 선물해 주신것, 어디를 가건 당신의 사람들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시는 것.

절망하기 전 항상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

그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열심히 키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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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Unknown member
May 23, 2021

나넷 오뎃의 세례를 축하드립니다~^^ 하느님 안에서 성가정 이룩하신것도 축하드립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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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세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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